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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현

方承鉉

1900. 7. 28 ~ 197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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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방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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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맹산(孟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맹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양부 만세운동
  • · 호굴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7월 28일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 맹산면(孟山面) 수정리(水晶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온양(溫陽)이고, 이명으로 방영(方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부친 방기원(方基元)과 함께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소속으로 국내 항일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만세운동 당시 평양부(平壤府)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학생으로 평양 시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1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1920년 8월 14일 맹산군 청년회(靑年會) 창립총회에 참가하여 청년회 간사로 선출되었다. 또한 같은 해 (음)11월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대한독립청년단의 후신인 대한청년단연합회 소속으로 맹산군 선유봉(仙遊峰)에 있는 호굴(虎窟)을 근거지로 삼아 김봉규(金琫奎)·조신성(趙信聖)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 동료들과 함께 맹산·영원(寧遠)·덕천(德川)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일제 경찰과 친일파를 처단하고, 지역을 순회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3월 덕천군(德川郡) 풍덕면(豊德面) 덕주령(德周嶺)에서 우편물을 호송하던 일제 경찰을 습격하여 처단하고 우편물과 현금을 입수하였다. 또한 일하면(日下面)에서는 일제 경찰과 교전하여 순사 3명을 처단하였으며, 뒤이어 영원군 온창면(温倉面)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같은 해 5월 맹산군 옥천면(玉泉面)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1921년 6월 20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1926년 4월에는 시대일보사에 입사하여 맹산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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