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연
朴致然1868. 2. 6 ~ 1925. 1.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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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68년 2월 6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치언(朴致言)이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6일 청양군 목면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청양군 목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5일 정산면(定山面) 서정리(西亭里) 정산시장 만세시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일어났다. 4월 5일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의 사망이 계기가 되었다. 정산시장 만세운동은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정산시장 장날인 4월 5일 오후 시장으로 나가 주민들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산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즉각 출동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한 홍범섭 등 30여 명을 체포하고,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일제 헌병의 만세시위자 체포에 분노한 주민들이 헌병주재소로 달려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서 시위를 이끌던 권흥규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친인척들과 함께 시신 인수를 위해 헌병주재소로 갔다. 헌병주재소 앞에는 이미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이들과 함께 운구행렬의 선두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고인의 자택이 있는 목면 안심리로 향하였다. 권흥규의 사망 소식을 들은 각 마을마다 지나가는 상여가 세워놓고 노제를 올렸고, 운구행렬에도 동참하였다. 운구행렬이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부터 독립 만세의 외침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운구행렬은 만세운동으로 변화하였고, 그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졌다. 이에 일제는 공주(公州)의 헌병대를 안심리 방면으로 급파하였고, 운구행렬과 마주치자마자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과 권영진(權寧鎭) 등 여러 사람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에 구금되었고, 1919년 4월 21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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