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교
徐尙敎1926. 11. 7 ~ 2018. 3.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극단(太極團
- · T.K.D)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926년 11월 7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남산정(南山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2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목민(木民)이고, 일제의 강요로 인한 창씨명은 대달상교(大達尙敎)이다. 대구공립상업학교(大邱公立商業學校, 현 대구상원고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동교생 이상호(李相虎)·김상길(金相吉) 등과 함께 항일학생결사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하였다. 태극단이란 명칭은 한말 이래 사용되어온 태극기를 상징하여 정한 것이며, 약칭으로 T.K.D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조선 민족의 이상적인 단결과 능률로서 당면 최대 목적인 조선 독립을 도모하여 투쟁할 것이며, 그 종국의 목적은 전세계 인류의 영원한 평화·자유·평등을 찾는 데 있다”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상호·김상길과 함께 “우리 청소년들은 일본 군대에 입대하지 말고, 그들의 전쟁 수행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독립투쟁에 참여하자”는 문서를 돌리며 단원들을 규합하였다. 일본군 입대 반대 등 침략 정책에 저항하는 내용의 유인물이었다. 그 뜻에 동참하여 김정진(金正鎭)·이준윤(李浚允)·이원현(李元鉉)·윤삼용(尹三龍) 등이 입단하였다. 1943년 5월 초까지 약 20여 명의 학생들과 대구 앞산에서 태극단 결성식을 갖기로 하였다. 그러나 단원들의 참석이 저조하여 정식 결성식은 무산되었으며, 6월 6일 다시 결성식을 갖기로 하고 우선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태극단의 구체적인 투쟁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단장에는 이상호가 추대되었다. 조직은 크게 일반조직과 특수조직으로 나누었으며, 최고의결기관으로서 간부회의를 구성하였다. 일반조직은 단원들의 정신과 체력 단련을 총괄하는 육성부(育成府)를 두고, 그 아래 관방국(官房局)·체육국(體育局)·과학국(科學局)을 두었다. 그리고 3국 아래에는 군사부(軍事部)·항공부(航空部) 등 10여개 부(部)를 두었다. 특수조직으로 건아대(健兒隊)를 두었는데, 건아대는 중학교 1·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을 대원으로 가입시켜 장차 단원으로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때 단원의 연성(鍊成) 활동을 지도·감독하는 체육국장을 맡았다. 체육국 산하에는 무도부·등산부·군사부·경기부·씨름부를 두었기 때문에, 무도부장과 등산부장·씨름부장도 겸하였다. 단원들과 함께 조직을 정비한 뒤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만약 국내에서 투쟁이 여의치 못할 때는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항쟁을 계속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용두산(龍頭山)·비슬산(琵瑟山) 등에서 학술연구토론회, 각종 체육회 등을 개최하여 단원들의 유대의식과 민족적 교양의 함양과 체력증강에 힘을 쏟았다. 더불어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여 군사관계 서적의 번역, 글라이더,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성된 지 2주 만에 단원의 밀고로 26명 모두 붙잡혔다. 1944년 1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5년, 장기 7년을 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강윤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