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석
成基錫1920. 1. 15 ~ 1990. 4.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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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0년 1월 15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월룡면(月籠面) 내포리(內浦里)에서 성희경(成禧慶)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군수를 지낸 성종영(成鍾永)의 5세손이다. 단파수신기를 직접 만들어 해외 독립운동 단체의 단파방송을 제일 먼저 듣고 이를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전하였다. 1938년 5월 20세에 경성중앙방송국(JODK)에 입사하여 기술부 조사과에 배치되어 방송국 지하실 실험실에서 근무하였다. 그곳에서 방송기기를 시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출력 방송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자신의 집에서 취미삼아 외국 단파방송을 들을 수 있는 단파수신기를 처음으로 직접 만들었고, 그 후 음질이 깨끗한 수신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1941년 봄, 주파수 9MHz대에서 우연히 한국어 방송을 듣게 되었다. 충칭(重慶)방송국에서 송출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우리말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장제스(張介石) 총통께서는 우리 임시정부 김구(金九) 주석에게 치하하시고 적극 지원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에는 구미외교부(歐美外交部)에서 30분간 방송하는 ‘미국의 소리(VOA)’라는 단파방송을 들었다.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출신으로 학교 훈도(訓導)와 금융계에 몸담았던 부친에게 이를 알리자, 부친 성희경은 평소 알고 지내던 조병옥(趙炳玉)·이범승(李範昇)·이인(李仁)·김병로(金炳魯) 등에게 이 사실을 전하였다. 이즈음 방송국 실험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이이덕(李二德)도 단파방송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이덕은 미국 주립대 전기과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자로 방송국 업무용으로 비치된 단파수신기를 조작하여 미국의 제너럴 서비스(General Service)의 단파방송을 몰래 청취한 것이었다. 그 뒤 이이덕과 함께 단파방송을 몰래 듣고 이 내용을 송진근(宋珍根) 아나운서와 양제현(楊濟賢) PD에게 몰래 이야기해주곤 하였다. 1941년 11월 경기도 광주(廣州)로 전근을 가게 되었으나 1942년 8월 개성(開城)방송소 소장으로 발령된 이이덕에 의해 개성방송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계속해서 단파방송을 몰래 청취하는 한편, 이이덕의 사위 고한균(高漢均)에게 단파수신기를 만들어 주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에 정보국을 통해 방송전파를 강력하게 통제하였고 시민들의 고급수신기를 압수하는 한편, 무허가 라디오의 수신도 단속을 강화하던 때였다. 단파방송을 통해 얻은 연합군의 승전 소식, 광복군의 활동, 국제정세 등의 도청 내용이 전파될까 우려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패전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민족지도자들에게도 전달되었다. 1942년 말부터 단파방송 도청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었다. 사건 자체가 일제 경찰에 의해 인위적으로 확대된 측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방송 기술인 등 방송국 직원을 비롯해 정치인, 학생, 일반인, 언론인 심지어는 라디오를 취급한 상인까지 무려 200여 명이 기소되거나 조사를 받았다. 1942년 12월 2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3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치안유지법·무선전신법·육해공군형법 위반, 그리고 유언비어 유포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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