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환수
徐桓洙1888. 3. 1 ~ 1940. 8.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간회 대구지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88년 3월 1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하청면(河淸面) 연구리(蓮龜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서정수(徐丁洙)이며, 한자가 다른 이름으로는 서환수(徐煥洙)라고도 썼다. 활동 당시 ‘주소가 일정하지 않다(住居不定)’고 되어 있으나, 1920년대에 주로 대구(大邱)에서 떡장수를 하면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떡장수를 해서 번 돈으로 대구청년회(大邱靑年會)·경북고아구제회(慶北孤兒救濟會) 등의 사회단체 활동과 수해, 한해 등의 구제의연금(救濟義捐金)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음이 확인된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이 많았고 한국 독립을 희망했다. 신간회(新幹會) 대구지회(大邱支會) 등에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8월 28일 밤 8시 대구부 남성정(南城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일대) 중외일보 대구지국(大邱支局) 앞에서 신간회 대구지회 간부 유쾌동(柳快東)·이강옥(李康沃) 등과 만났다. 함께 경술국치(庚戌國恥) 20주년이 되는 8월 29일을 기해 격문을 작성하여 한국 민중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계획하였다. 유쾌동이 격문 작성을 맡고, 격문을 게시하는 담당하기로 일을 분담하였다. 이들은 신간회 대구지회 회관에서 벼루와 적색 잉크를 가져오고 명치정(明治町, 현 대구 중구 계산동 일대) 2정목(丁目) 박문당(博文堂)에서 반지(半紙) 20매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이천만 동포 우리들이여, 경술년(庚戌年)의 금일을 망각할 것인가. 끓는 피 위에 기세를 다하자. 잊지 말자. 해방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의 격문 10매를 제작하였다. 위의 역할 분담에 따라 다음날인 8월 29일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직접 봉산정(鳳山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일대) 이와이서점(岩井書籍店) 앞 전신주와 백종기(白鍾基) 집 담장, 덕산정(德山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일대) 노하라전당포(野原質屋) 입구 전신주, 남성정 대구양기소(大邱洋譏所) 앞 전신주, 대화정(大和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大安洞) 일대) 곡물시장(穀物市場) 입구 담장, 원정(元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일대) 스기하라재목점(杉原材木店) 앞 십자로의 전신주, 달성공원(達城公園) 입구 남측 전신주, 시장정(市場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東山洞) 일대) 56번지 앞 전신주 등 총 8곳에 각각 격문 1매씩을 부착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유쾌동·이강옥과 함께 대구경찰서에 붙잡혀 조사를 받은 후, 1930년 9월 11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그 해 9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1931년 5월 30일 만기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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