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인
徐輔仁1895. 5. 6 ~ 1960. 3.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보천교
- · 신인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4) 1895년 5월 6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嘉昌面) 삼산리(三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서정(徐政)을 사용하였다. 1930년에 증산교(甑山敎)를 창시한 강일순(姜一淳)의 제자인 차경석(車京錫)이 만든 보천교(普天敎)에 입도하였다. 차경석이 1925년에 보천교인을 모아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하자 많은 교단 간부들이 이에 반발하여 보천교를 떠나 따로 교파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자 조선총독부는 보천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보천교가 사라지자 증산교의 일파로 1915년에 창건된 미륵불교(彌勒佛敎)에 입교하였다. 미륵불교는 증산교의 일파로 미륵신앙의 근거지인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에 자리한 모악산(母岳山) 금강대(金剛臺)에서 김형렬(金亨烈)이 창시하였다. 김형렬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경력을 가진 인물로 1901년 강일순이 증산교를 개창할 때부터 측근으로 8년간 활동하였다. 강일순이 죽은 후 1915년에 미륵불교를 창시하였을 때는 수천 명의 교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1921년에는 서울로 진출을 꾀하여 불교진흥회(佛敎振興會)를 조직하였다. 이듬해에는 다시 미륵불교로 개명하고 모악산 금산사(金山寺)에 본부를 두었다. 1932년 김형렬이 사망하면서 미륵불교는 여러 계파로 나뉘어졌다. 전북 완주군(完州郡) 출신인 정인표(鄭寅杓)는 1934년부터 김형렬 휘하에 있던 미륵불교 신도들을 끌어 모아 신앙을 이어갔다. 1938년 4월 ‘일본사(日本死) 조선생(朝鮮生) 소화락(昭和落) 일망무지(日亡無地)’라는 깃발을 들고 일본이 망하고 곧 밝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전북 정읍군(井邑郡, 현 정읍시)을 활동 무대로 하는 신인동맹(神人同盟)을 결성하였다. 신인동맹은 미륵불교를 믿는 교인들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였다. 신인동맹은 일본의 패망을 기원하는 한편 국권회복에 앞장서기를 결의하고 대원 50여 명으로 조를 편성하여 경찰서 습격 등을 계획하였다. 1940년 2월 신인동맹에 가입하여 경북 문관(文官)에 임명되었다. 1940년 11월 9일 정인표로부터 독립이 되면 사용할 수 있도록 인장 220개를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만들어 신인동맹원들에게 분배하였다. 신인동맹의 활동은 일제 경찰의 밀정으로, 교인을 위장하여 활동하던 김병환(金炳煥)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김병환은 김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양재홍(楊載弘)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였다. 1940년 12월 15일 정인표·이종후(李宗厚)·권중기(權重琦)·곽지흥(郭祉興)·정동훈(鄭東勳) 등을 포함한 43명이 붙잡혀 김제·정읍·부안(扶安)·이리(裡里, 현 익산시)·전주(全州)·군산(群山) 등의 경찰서에 나뉘어 구금되었는데, 이때 붙잡혔다. 1941년 7월, 43명 전원이 전라북도 경찰부로 이송되어 4개월간 조사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전주에 있는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나, 재판은 1943년 9월에야 시작되었다. 그해 10월 15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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