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갑
白正甲1919. 5. 22 ~ 2006. 1.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 · 한국광복군훈련반
- · 토교대
- · 경위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9년 5월 22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외상면(外上面) 학무리(鶴舞里)에서 태어났다.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明治大) 정경과를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고, 1944년 1월 20일 평양 주둔 일본군 제50부대에 입대하였다. 중국으로 파견되어 쉬저우(徐州) 근처 일본군 부대에 배치되었다. 1944년 4월 29일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군 유격대를 거쳐 광복군 징모 제6분처로 갔다. 징모 제6분처는 1942년 4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거점을 마련하고, 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지난(濟南) 등 산둥성(山東省) 일대에서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징모 제6분처는 초모 활동의 성과로 병력이 증가하자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고, 그 해 6월 지대 성립식을 가졌다. 이후 한국광복군훈련반( 韓國光復軍訓練班, 한광반)에서 교육훈련을 받았다. 한광반은 징모 제6분처 주임 김학규(金學奎)가 중국군 제10전구 사령관 탕언보(湯恩伯)와 교섭하여 린추안(臨泉)의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단에 설치하였다. 1944년 11월 한광반을 졸업하고, 장준하(張俊河)·김준엽(金俊燁)·노능서(魯能瑞)등 36명과 충칭(重慶)행을 택하였다. 1944년 11월 말 교관 신송식(申松植)의 인솔 하에 일행들과 함께 후베이성(湖北省) 라오허커우(老河口)를 거쳐 1945년 1월 31일 충칭에 도착하였다. 이후 1945년 2월 20일 한인청년들을 임시 수용하던 토교대(土橋隊)에 편성되었다. 이어 임정 청사 경비, 요인 경호를 담당하는 경위대(警衛隊)로 차출되었다. 광복군에서는 총사령부 부관처 서무과 과원으로 배속되었다. 1945년 5월에는 토교대 부대장에 임명되어, 중국군 포로수용소에서 인수해 온 한인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1945년 11월 5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충칭에서 상하이(上海)로 이동하며 경호를 담당하였고, 11월 23일 윤경빈·장준하·선우진 등과 함께 제1진으로 환국하는 주석 김구(金九)·부주석 김규식(金奎植) 등 주요 임정 요인들을 수행하여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한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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