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소
朴燦韶1875. 1. 30 ~ 1919. 4.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창성군 창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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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875년 1월 30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전창면(田倉面) 신평리(新坪里)에서 태어났다. 서북 지방에서 교세를 확장하고 있던 기독교에 입교한 이후, 1915년 전창면 신평리에 설립된 전창교회에서 집사(執事)로 활동하였다. 향리에 거주하며 1919년 4월 1일 창성군 창성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시위 과정에서 일본군에게 희생되었다. 1919년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창성군 내에서도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창성군 읍내교회 장로 강제희(康濟羲)는 의주군(義州郡) 월화면(月華面)의 교회 목사 송문정(宋文正)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측 대표인 이승훈(李昇薰)의 밀지와 활동 자금 120원을 전달받고 거사를 결심하였다. 상인이었던 강제희는 삼엄한 일제 헌병대의 감시를 피해 전창리(田倉里)에 있는 본인 소유의 상점에서 창성군 내 기독교인들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때 같은 교회 권찰(勸察)인 강정식(康貞植)·황대붕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논의 끝에 1919년 4월 1일 오전 10시 서문 밖 들판에서 거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어서 역할 분담이 있었는데, 강남산맥(江南山脈) 안쪽에 위치한 5개 면의 주민들에게 운동 계획을 전하고 참가를 독려함과 동시에, 산맥 바깥의 주민 동원을 책임지는 대유동교회(大楡洞敎會)와의 연락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다. 만세운동 당일인 4월 1일 오전 10시, 1,0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강제희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삼창하자, 숨겨온 태극기를 꺼내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읍내를 행진하였다. 곳곳에 매복해 있던 일본군이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다. 이때 강정식과 함께 총탄에 맞고 다음 날인 4월 2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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