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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천

朴且千

1891. 9. 14 ~ 195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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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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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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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고령군 우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1년 9월 14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거주하고 있던 도진동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4월 6일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의 박재필(朴在弼)과 도진동의 박영화(朴英華) 등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였던 만세운동을 고령에서도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저녁 6시경 동지들과 함께 도진동 주민들을 불러 모아 만세시위의 뜻을 은밀하게 전달하였다. 밤 9시경이 되자 마을 천변(川邊)에 거사에 동의한 주민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마을 안을 행진한 후 우곡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밤 11시경이 되어 우곡면사무소에 도착하여 문 앞의 마당과 나무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밤 12시경 우곡면장이 만세시위를 중지하고 해산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자 시위대는 만세시위를 멈추고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이 도진동 만세운동은 이틀 후인 4월 8일 고령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박재필·박영화와 함께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모진 조사를 거친 후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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