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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진

朴重鎭

1910. 10. 5 ~ 1949.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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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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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長城)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남공립사범학교 독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 · 독서회사건
  • · 담양노조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0년 10월 5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진원면(珍原面) 진원리(珍原里)에서 태어났다. 전남공립사범학교 재학 중 조국의 독립과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교내에 조직된 독서회에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이른바 ‘독서회사건(讀書會事件)’에 연루되어 1930년 3월 퇴학처분을 받고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금고 4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풀려난 후 1931년 4월 전남담양노동조합(全南潭陽勞動組合)의 상임서기로 재직하며 조합원의 임금인상 투쟁을 지도하였다. 그해 10월 강재영(姜宰泳)·정병용(鄭炳庸) 등과 함께 쌀 운반비용과 관련된 노동임금감하방지운동(勞働賃金减下防止運動)을 주도하였다. 이 운동은 담양시내에서 담양역까지 3전 5리였던 쌀 한가마니의 운반비용이 1930년 겨울 불경기를 이유로 3전으로 인하되었고, 다시 1931년 10월 중 2전 7리로 내렸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 경찰에 다시 붙잡혔다. 1931년 11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과 업무방해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여기에 1930년에 받은 집행유예 판결이 취소되어 금고 4월이 가중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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