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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朴楨洙

1904. 6. 6 ~ 1959.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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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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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光陽)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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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화회
  • · 나고야 합동노동조합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정화회
  • · 나고야 합동노동조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904년 6월 6일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광양면(光陽面) 인동리(仁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박정수(朴丁秀)가 있으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신본정수(新本楨洙)·대환정부(大丸貞夫)를 사용하였다. 1935~1936년 기후현(岐阜縣) 내 수력(水力)·전기·도로공사 현장 등에서 일하였다. 건설 현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생활하던 중 기후현 지역 노동운동가 박경준(朴景準)이 조직한 정화회(正和會)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가담하였다. 정화회는 겉으로는 친목 단체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공산주의 선전을 그 목적으로 했다. 약 3,000여명의 지역 노동자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인근 아이치현(愛知縣) 나고야시(名古屋市)에서 한국인 운동가가 합동노동조합(合同勞動組合)을 결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합동노동조합 기후현 지부를 정회회 지부로 위장 설치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할 것, 노동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불평불만을 격발시켜 일제에 대항할 것을 강령으로 삼아 운동을 추진했다. 1936년 말 합동노동조합 기후현 지부 회원 모집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박경준·이봉조(李鳳祚)·김두영(金斗榮) 등 4명과 함께 지부 내 공산주의 비밀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노조활동을 가장하여 노동자 권익 획득 투쟁에 나섰다. 이들과 함께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자본가에 대항해 이를 승리로 이끌었다. 대량 해고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집요하게 복직투쟁을 전개하여 이 역시 유리하게 해결하였다. 이밖에 노동자 계몽수단으로써 기후현 내 20개소에 야학회를 개설하고 회원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하였다. 직접 노동현장 속으로 들어가 불만을 청취하고, 이들의 쟁의를 선동했다. 또한 공산주의 성향의 한글 신문인 『조선신문(朝鮮新聞)』을 회원에게 배포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토대로 궁극적으로 일제 멸망과 한국의 독립을 기도하였다. 1937년 초 일제 경찰의 공산주의자 탄압 과정에서 조직이 노출되어 합동노동조합 기후현 지부 내 공산주의 비밀그룹 전원이 붙잡혔다. 1937년 7월 14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같은 해 10월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41년 12월 고치현(高知縣) 하타군(幡多郡)의 한 공사장에 취직하였다. 오랜 경력으로 한국인 노동자의 리더가 되어, 이들에게 사회주의 문헌인 『문명은 어디로 가는가』, 『소련의 지식』 등을 대여해 읽도록 하였다. 또 좌익노동조합 조합가(組合歌)인 ‘노동조합의 기(旗) 아래에서’를 가르치는 등 공산주의 선전에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1942년 5월 일본 경찰에 다시 붙잡혀, 그 해 10월 3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듬해 4월 11일 기소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약 11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미에현(三重縣)으로 이동하여 노동에 종사하였다. 일제 경찰의 감시대상자인 특별요시찰인(特別要視察人)으로 등재되어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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