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훈
朴日勳1895 ~ 1924. 10. 25
관련 단체
- · 의성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의성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사망 당시인 1924년 30세로 되어 있어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한자가 다른 박일훈(朴一勳)을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편강렬(片康烈)이 결성한 의성단(義成團) 특별의용군(特別義勇軍)으로 활동하다가 사망하였다. 의성단은 1920년 만주 펑톈(奉天)에서 조직된 항일무장투쟁 단체로 고문은 양기탁(梁起鐸)·남정(南正)이었으며, 단장은 편강렬(片康烈), 부단장 한동추(韓東樞)·승진(承震), 총무 김정관(金靜觀)·심준구(沈駿求) 등으로 조직을 구성하였다. 1922년 11월 이래 훈련소를 설치하여 대원 양성을 비롯하여 농촌 부흥, 친일분자 숙청, 일본인 기관 파괴, 국내공작과 전만통일공작(全滿統一工作)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한때 단원이 230여 명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1924년 7월 정의부(正義府)에 흡수·통합되었다. 1923년 6월 의성단이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영산경찰주재소(永山警察駐在所)를 습격할 때 참가하여 동지 김병주(金炳周)가 전사하자 9곳에 총상을 입으면서도 분전하여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2시간의 교전에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44식 총 2정과 탄환 70발, 권총 1정과 탄환 20발, 군도(軍刀) 등을 노획하였으며, 일제 경찰 7명 등을 처단하였다. 1924년 (음)2월에는 창춘(長春)에서 의성단 단장 편강렬이 이끄는 단원 10여 명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대원들은 창춘성에 거주하는 조경근(趙敬根)에게 50원, 유규형柳(奎亨)에게 500원, 김동만金(東晩)에게 500원을 징수하였다. 또한 함선재(咸善哉)에게 2월 중순, 3월 26일, 3월 말일 3차례에 걸쳐 1차례에 각각 300원씩 합계 900원을 모금하였다. 이밖에 홍일린(洪一麟)에게는 “조국을 위하여 활동하는 우리에게 돈을 제공하라. 불응하면 동족간에 의리를 잃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문서를 송부하여 현금 600원을 모집하였으며, 황성종(黃晟鍾)에게 3월 25일에 300원, 4월 3일에 300원, 4월 4일에 900원을 모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24년 10월 25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더후이현(德惠縣) 칠대(七臺)에 위치한 자택에서 영산경찰관주재소 습격 당시 입은 총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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