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서
朴雲瑞1890. 10. 2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광복군총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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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1) 1890년 10월 28일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동부면(東部面) 동하동(東下洞)에서 태어났다. 부친 박재화(朴在和)의 2남 중 차남이다. 이명으로 박기영(朴基永)을 사용하였다. 1903년 봄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펑톈성(奉天城) 콴뎬현(寬甸縣) 협피구(夾皮溝)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다. 1920년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12월 콴뎬현 향로구(香爐溝)에서 결성된 광복군총영은 오동진(吳東振)을 총영장으로 추대하였고 참모부장에는 이탁(李鐸), 경리부장에는 조맹선(趙孟善)이 선임되었다. 이후 광복군총영은 1920년 한 해 동안 일본군경과 교전 78회, 일제 주재소 습격 56회, 면사무소 등 소각 20개소, 일제 경찰 95명을 처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1921년 4월 콴뎬현 초엽구(草葉溝)에서 고영태(高永泰)의 권유를 받아 그 곳에 근거를 둔 광복군총영에 가입하여 통신사무를 담당하였다. 같은 해 10월 초산군(楚山郡) 성면(城面) 옹암주재소(甕岩駐在所) 소속 순사 이시청李(時淸)이 관톈현 천자구(淺子溝)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지순(李芝淳)을 염탐하러 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0월 30일 이시청을 처단하였다. 이때 동지와 함께 권총을 휴대하고 중국 복장으로 변장한 후 밖에서 주위를 경계하는 일을 맡았다. 1928년 3월 국내로 들어왔다가 초산경찰서에 붙잡혔으며, 신의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8월 31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살인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으며,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0년 8월 16일 법무국장 통첩에 의해 경성형무소로 이송되었다가 총 6년 4개월여의 옥고를 치르고 1935년 3월 22일 가출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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