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효원
裵孝源1891. 4. 26 ~ 1948. 5.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흠치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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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891년 4월 26일 경상북도 군위군(軍威郡) 산성면(山城面) 백학리(白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배세기(裵世基)이다. 1920년 (음)8월 중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흠치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후 강일순(姜一淳)을 중심으로 시작된 급진적 성격의 신종교운동이었다. 강일순 사후 차경석(車京石)이 교주(敎主)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흠치교는 교인을 모집하면서 “종교를 표방해 치성비라고 하는 군자금을 모집하고 다수의 교인 집단을 만들어 1924년 갑자년(甲子年)을 기하여 국외에서 이미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독립결사단과 호응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개시할 것” 이라고 선전하며 자금모집과 교단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단의 조직은 교주 아래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은 6인조를 두고 6인조는 다시 각 12인조, 12인조는 각 8인조, 8인조는 각 15인조 등 순서를 통해 조직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각 조직별로 치성비라는 이름으로 6인조는 30원, 12인조는 15원, 8인조는 10원, 15인조는 5원의 군자금을 거두어 종교 행사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1920년 (음)8월경 이장돈(李障敦)의 권유를 받아 흠치교에 가입하여 이장돈의 8인조가 되어 흠치교 활동을 시작하고, 10원의 군자금을 냈다. 이후 허상호(許相鎬) 등 3명을 기반으로 자신의 15인조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1921년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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