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수
裵鳳秀1928. 12. 18 ~ 2005. 2.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순국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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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3) 1928년 12월 18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대현면(大峴面) 여천리(呂川里, 현 울산광역시 남구 여천동)에서 태어났다. 1944년 항일결사 순국당(殉國黨)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42년 동래공립중학교(東萊公立中學校, 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공립중학교는 3·1운동은 물론 1942년 초 ‘조선독립당’이 조직되는 등 항일 학생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학교였다. 동래공립중학교에 재학 중 동기생 친구 배광진(裵光珍)과 함께 차병곤(車炳坤)을 만나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항일 학생조직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차병곤은 1943년 봄 만주에서 귀국하여 부산실천상업학교 재학 중, 조선독립당 당원 이관수(李觀洙)의 영향을 받아 부산진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 동창인 박정오(朴禎五)·신정호(辛正浩) 등과 함께 항일의식 배양과 독립운동을 추진하고자 동지 규합과 조직체 구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항일 학생조직 결성을 위해 오석제(吳錫濟)·박진웅·박지홍(朴智弘) 등을 합류시켜 외연을 확장하고 있었다. 1944년 5월 1일 신정호의 집에서 차병곤·박정오(朴楨五)·신정호·배광진·남정기 등 12인과 함께 항일결사 순국당을 결성하고 선전책을 맡았다. 순국당을 결성하면서 ‘민족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 한다’라는 강령하에 조선 총독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처단, 일본군 시설 파괴, 일본인 집단 거주지 방화, 은행 습격, 미군 공습 시 산불 놓기 등의 행동 목표를 결의하였다. 1944년 5월 상순에는 부산 영도다리 난간에 ‘대한독립만세’가 쓰여진 벽보를 부착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같은 달 하순에는 진해 근교의 군용 철교 폭파 계획, 일본군 강제 징집시 연합군에 투항, 총독 처단 계획 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무력 항일투쟁이 여의치 않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1944년 7월 1차 선발대로 차병곤 등이 국경을 넘어 중국 지린(吉林)에 도착하였다. 뒤이어 2진이 출발하였으나,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7월 28일 붙잡히면서 순국당 당원 13명 전원이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여 간 검찰에 계류,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월 1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나 풀려나지 못하고 기결수와 함께 부두 작업에 투입되었다가 광복이 되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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