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복
朴在福1918. 1. 28 ~ 1998.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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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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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1918년 1월 28일 충북 영동군(永同郡) 심천면(深川面) 초강리(草江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농부의 딸로 태어나 1934년 2월까지 집안의 농사일을 돕다가, 대전(大田)으로 가서 본정 3정목(현 대전광역시 동구 효동)에 있는 군시제사주식회사(郡是製絲株式會社)의 공장 여공으로 취직하였다. 이후 1938년 4월부터 거주지인 대전부 본정 2정목(현 대전광역시 동구 인동)에 있는 백화점 내 양만기梁(萬技) 상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38년 군시제사주식회사에서 동료 여공들에게 중일전쟁의 전황을 전하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였다. 같은 해 10월과 11월 공장의 기숙사에서 친한 동료 정삼례(鄭三禮)·김추현(金秋鉉)·한동임(韓東任)에게 “일본은 현재 전쟁을 하고 있으나 돈이 적어 불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돈이 많다. 또 자동차와 비행기 등도 일본보다 많기 때문에 장기전에 이르면 일본은 물자 부족으로 인해 패전한다”고 발언하였다. 1939년 3월 대전부 천정(泉町, 현 대전광역시 동구 천동)에 있는 철로에서 정삼례·김추현·안운직(安運直)·백정옥(白貞玉)에게 또 다시 일본은 물자가 부족하여 패할 것이라는 말을 하여 일제 선전의 허구성을 반박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불온사상 소지자로 여긴 경찰에 붙잡혔다. 1941년 10월 2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으로 불온한 언동을 하고 전시에 민심을 동요시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육군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고 1년을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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