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하
朴潤河1925. 11. 9 ~ 1996.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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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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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5년 11월 9일 전북 전주군(全州郡) 삼례면(參禮面) 후정리(後亭里, 현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에서 태어났다. 삼례공립보통학교(參禮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7년 4월 전주북공립중학교(全州北公立中學校, 현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전주에서는 완산정(完山町, 현 완산구 완산동)에 살았다. 전주북공립중학교 재학 중 학교의 차별적 교육과 한국인을 멸시하는 태도에 염증을 느끼고 두 차례에 걸쳐 자진퇴학을 결행한 끝에 졸업을 앞두고 있던 1943년 5월 학교를 그만두었다. 전주북공립중학교 재학 당시 한국인 화학 교사였던 노환(盧桓)의 수업을 통해 민족의식을 각성하였다. 전주북공립중학교 학생과 전주 일대 학생들과 회합하여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독립 의지를 다졌다. 노환은 수업 중 여러 차례 한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 일제가 미국과 중국에게 패망할 것이라 하면서 한국인 학생들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1943년 1월 수업 중 노환의 발언을 듣고 완산정 자택에서 전주지역 학생인 최순기(崔淳基)·김병순(金炳純)·김태기(金泰基) 등을 불러 모아 태평양전쟁의 전황과 한민족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때 “전쟁이 장기전이 되어 일본에게 불리하니 조선독립의 때도 가까워지고 있다. 세계적인 위인인 인도의 간디가 그러했듯, 우리도 조선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간디와 같은 인물이 한국에 없다는 말을 듣고 “당국의 탄압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만주에서 무력을 양성하며 독립의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서울에도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있으니 기회를 틈타 서로 호응하면 조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독립이 성취될 것이므로 그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2월에는 자택의 모임에서 위 인물들과 함께 이동의 자유도 없고 배급에도 차등을 두는 내선일체의 허구성을 논하며, 한국인의 미래는 오로지 독립을 통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전주 내 학교들의 동향을 감시하던 경찰에게 탐지되어 1943년 8월 붙잡혔다. 1944년 6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여러 차례 불온한 정치적 언동을 하고 전시에 민심을 동요시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약 1년 2개월간의 옥고 끝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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