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학보
裵鶴甫1920. 8. 19 ~ 1992. 10.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다혁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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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20년 8월 19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선남면(船南面) 동암리(東岩里)에서 배계흠(裵桂欽)과 순천 김씨(順川 金氏)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호는 송운(松雲)이며 족보명은 배영보(裵泳甫)이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식 성명 강요로 개명된 성산학보(星山鶴甫)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37년 선남공립보통학교(船南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4월 대구관립사범학교(大邱官立師範學校, 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심상과(尋常科) 9기생으로 입학하였다. 재학 중인 1941년 2월 15일 동교생 권쾌복(權快福)·김효식(金孝植)·문홍의(文洪義)·서진구(徐鎭)九 등 15명과 함께 대구부 대봉정(현 대구시 대봉동)의 유흥수(柳興洙) 하숙집에 모여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대구사범학교 연구회의 정신을 계승하여 각 분야에 걸쳐 실력을 양성하고, 조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목표로 결성하였다. 다혁당 당수 권쾌복 다음인 부당수에 추대되었다. 총무부·학술부·문예부·연구부·경기부 등의 부서를 두었으며, 새로운 회원을 받지 않고 결성 당시 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특징을 가졌다. 다혁당의 부당수이면서, 연구부 책임 겸 운동부 산하 배구부 책임을 맡는 등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 1941년 3월부터 5월까지 비밀 회합을 통해 당원의 비밀 엄수·절대복종·주 2회 회합·하급생 지도 등을 당 규약으로 정하고,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분석하며 운동 상황을 전망하였다. 또 민족차별 교육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대구사범학교 연습과 학생(주로 일본인)과 심상 그리고 학생(대부분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시키는 방안도 모색하였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잡혀 2년여 동안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4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광복을 맞이하고 풀려났다. 1946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성주 선남국민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85년 8월 대명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할 때까지 교직에 봉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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