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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

朴敞奎

1880. 10. 19 ~ 197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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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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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寶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보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
  • · 조성리교회
  • · 순천성경학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순천노회 박해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0년 10월 19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조성면(鳥城面) 조성리에서 태어났다. 1982년 조성교회 옆에 건립된 ‘독립유공자 성암 박창규장로 추모비’에는 고흥군(高興郡) 도양면(道陽面) 관리(官里)에서 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식 성명 강요로 개명된 신본창규(新本敞奎)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도양면(道陽面) 서기 사직 후 기독교를 믿고 지냈다. 농사를 지으면서 순천노회에서 운영하던 순천성경학원을 졸업하였다. 1937년 5월 보성군 조성리교회(鳥城里敎會) 장로가 되었고, 이후 순천노회에서 전도사로 임명되었다. 1940년 4월경 전도사로 시무하던 조성교회에서 ‘우리들의 준비’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신앙을 돈독히 하여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였다. 같은 해 6월경에는 ‘주의 재림을 사모하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심판하므로 신앙을 돈독히 하여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의 설교를 하였다. 일제 식민 당국은 기독교인의 신사참배 거부나 말세 재림신앙을 일왕(日王)에 대한 불경죄를 짓는 것이요, 일본의 국체 변혁 선동하는 것이라고 여겨 경찰력을 동원하여 탄압하였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1940년 9월 20일 새벽을 기하여 전국에 ‘조선기독교도 불온분자 일제 검거령’을 내리자, 경찰이 11월 15일 순천중앙교회 박용희(朴容羲) 목사를 비롯한 순천노회 회원을 검거할 때 이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42년 9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에도 조성교회 장로로 시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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