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정수

朴貞守

1901. 3. 8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정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부산(釜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부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901년 3월 8일 경상남도 부산부(釜山府) 좌천동(佐川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부산진(釜山鎭)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에 부산부 좌천동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3일경 독립선언서가 부산에 전달되자 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朱敬愛)는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과 연락을 취하는 한편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만세운동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동료 교사 박시연(朴時淵)과 함께 학생들을 규합하여 3월 11일 시위에 나서기로 하였다. 교사 주경애와 박시연으로부터 거사 계획을 전달받은 후 동료들과 준비 작업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3월 10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고등과 친구 10명과 함께 밤을 새워 태극기 50여 장을 만들었다. 3월 11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밤 9시경, 교사 주경애와 박시연의 인솔에 따라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기숙사를 뛰어나와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거리의 군중들이 적극 호응하였다. 준비한 태극기를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날 시위에 300~400여 명 정도의 군중이 참가하였다. 만세시위를 시작한 지 2시간이 경과했을 무렵, 일제 군경이 대거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1921년 부산여자청년회 일반회원, 1929년 근우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