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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두

朴在斗

188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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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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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扶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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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좌산내면(左山內面) 우서리(愚西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6세인 것으로 보아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장성군(長城郡) 부안군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식민지 지배정책을 가속화하였다. 1907년에 이르러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강제로 고종을 퇴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적으로 체결하고 한국의 내정까지 장악했으며, 군대 해산까지 강행하였다.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해 전국 각지에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의병을 일으켰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07년 (음)12월 기삼연(奇參衍)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이후 부대원 60명과 함께 장성군 내에서 친일파 습격,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11월 20일 일제가 목포경비소 주도로 흥덕군(興德郡, 현 고창군 북부)과 부안군 일대에서 활동하는 의병 검거 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09년 12월 1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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