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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옥

朴長玉

미상 ~ 1909.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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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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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7)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성장 과정 등은 확인할 수 없다. 1908년부터 1909년까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뒤이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관리임명권·행정권·법률제정권 등을 빼앗았으며, 그 부속 밀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였다. 일제는 의병 토벌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헌병분견소·분파소·헌병수비대 등을 증설하고 순사를 파견하였다. 이를 피하기 위해 황해도 지역 의병부대는 주로 산악이나 연안지대에 의거하며, 20~30여 명을 전후한 무리로 분산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의병 중 포수 출신이 많아 무기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황해도 지역 의병들은 일본군의 토벌망을 교묘히 피하면서 항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의병항쟁이 활발히 전개되던 1908~1909년 사이 황해도와 평안남도 성천(成川)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8월 말에는 황해도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수하에 약 4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후 평남 성천으로 이동하여 규모를 두 배 가까이 증원하고, 서광준(徐光遵)·박호삼(朴浩三) 등의 의병장들과 세력을 합쳐 황해도와 성천군의 경계인 백년산(百年山)에 집합하여 공동항전을 벌였다. 수안(遂安)·신계(新溪) 등지에서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8월 12일 평남 성천 대수구헌병분견소에서 파견된 일본 헌병부대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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