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인화

朴仁和

1860. 10. 14 ~ 1908. 5. 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인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양(英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8) 1860년 10월 14일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수비면(首比面) 죽파동(竹坡洞)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는 박인화(朴仁花) 또는 박처사(朴處士)라고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안동에서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안동·영양·진보(眞寶, 현 청송·영양)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2월 예안분파소(禮安分派所) 공격을 시작으로, 류시연(柳時淵) 의진과 협력하여 1908년 1월까지 봉화(奉化)·예안(禮安, 현 안동)·영양·진보 등지에서 분파소를 공격하고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를 치렀다. 1907년 9월 10일 영양군 분파소를 공격하여 안동 방향으로 퇴각하는 일본 순사 오무라(小森)를 공격하여 군수품을 압수하고 중상을 입혔다. 같은 달 대구경찰서에서 안동분서로 부임하는 순사 오무라 일행을 붙잡아 처단하고 소지품 무명 1필 등을 확보하였다. 또 1908년 1월 부하 이화서(李和瑞)로 하여금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鞭巷)에서 자위단원을 공격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21일에는 진보의 기곡(基谷)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활동하던 중 일본군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예안·안동·의성(義城)·영양·청송(靑松)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4월 28일 안동군 임동면 대곡리 부근에서 부하 20명과 대구경찰서 소속 안동토벌대의 공격을 받고 흩어졌다. 대곡리 농민들의 도움을 받아 농민으로 변장 잠복하고 있던 중, 일본 변장순사대(變裝巡査隊)에 탐지되었다. 일본 순사대는 한국인 밀정 외 3명을 보내 대곡리 마을을 정찰하여 김 모金(某)씨 집에 피해 있음을 밝혀냈다. 1908년 5월 4일 임씨(林氏) 성을 가진 밀정이 ‘신돌석(申乭石)의 부하’라고 속이고 면담을 신청해 옴에 따라 이를 수상히 여기고 담장을 넘어 몸을 피하다가 밀정이 쏜 권총에 어께 관통상을 입고 곧 사망하였다. 일제 자료에는 “박처사는 안동군 대곡리 출생으로 부하 300명을 거느리고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여 쉽사리 체포되지 않았으나, 마침내 1908년 5월 대구경찰서 변장대에 총살되었다”라고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