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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

朴源永

미상 ~ 189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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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원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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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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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기우만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기우만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출신이다. 출생일자와 출생지역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확인할 수 없다. 자(字)는 주옥(周玉)이고, 호는 아산(鴉山)이다. 호남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척사론자인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로 위정척사를 계승한 유학자이다. 1896년 3월 기우만(奇宇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기정진의 문인인 기우만·기삼연(奇參衍)·정재규(鄭載圭)·정의림(鄭義林)·이승학(李承鶴)·기재(奇宰)·노응현(盧應鉉)·김익중(金翼中) 등과 함께 평소 외세의 개입에 극력 반대했기 때문에 1895년부터 1896년 1월 사이에 일어난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건과 단발령(斷髮令)에 크게 분개하였다. 그러던 중에 동학(同學)이자 기정진의 손자인 기우만이 광주에서 거의하자 적극 협력하였다. 그러다가 관군에게 붙잡혔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기우만의 문집인 『송사집(松沙集)』에 죽음을 애통해하는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일찍부터 둘 사이에는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기우만의 창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기우만의 회고에 의하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이 도성에 진입하자, 이때부터 국난의 위기가 닥쳐 올 것을 크게 염려하였다. 결국 예상대로 일본의 내정 간섭이 시작되고, 급기야 명성황후가 시해된 데 이어 고종까지 위협을 당하자 이에 대해 상당한 울분을 가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우만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때를 기다릴 것을 충고하는 침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후 1896년 초에 기우만은 격문과 통문을 사방에 돌려 의병을 모으고자 하였다. 이때 기우만이 도움을 요청하니, 즉각 달려와 창의를 함께 도모하고 계획을 세워 이에 힘을 보탰다. 실제로 기우만은 광주의 향교에서 의병을 모으고 광산관(光山館)을 본영으로 삼았는데, 이 때 적극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광주향교의 책임자인 재임(齋任)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기우만은 재종숙(再從叔)인 기삼연이 장성에서 병력을 이끌고 온 후, 고광순(高光洵)까지 합류하자 의병대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근왕을 위한 북상을 도모하고자 기삼연 등의 병력을 나주로 파견하였다. 3월 초 기우만은 기삼연을 선봉장으로 삼고 3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나주로 가게 하였다. 아전을 중심으로 조직된 나주의병과 협력을 도모한 후, 3월 13일 해남군수 정석진과 전 담양군수 민종렬(閔種烈)이 합류하면서 의병부대는 점차 힘을 얻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의병 진압을 위해 파견된 이겸제李(謙濟)가 거느린 관군이 나주에 진입하여 곧바로 의병부대에 협력한 정석진(鄭錫振)을 죽인 후 효수하면서 판세가 바뀌게 되었다. 이어서 의병부대와 연락을 취하던 민종렬이 체포되었고, 광주 본영에 머무르다가 관군에 붙잡혔다. 이에 크게 사기를 잃은 의병부대는 선유사 신기선(申箕善)이 가지고 온 고종의 칙유(勅諭)를 받아들여, 4월 24일 해산하고 말았다. 붙잡힌 정황에 대해서는 기록의 한계로 인해 자세히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기우만의 제문에 붙잡힌 후에도 유학자로서 그 풍모와 기상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기우만과 조희제(趙熙濟)의 기록에서 보이듯이, 체포된 뒤 관군이 손을 묶으려 하자 “머리가 잘릴지언정 유생이 되어 손은 묶을 수 없다”고 호령하였다고 한다. 이후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초연히 목숨을 버렸다고 하면서, 그 의기만은 잃지 않은 성인과 군자의 풍모를 지닌 유학자였다고 기우만은 제문을 통해 넋을 기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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