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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永烈

朴永

188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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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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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朴永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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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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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동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김동구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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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 상치지동(上致地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지역을 무대로 활약하던 김동구(金東九)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07년 7월 19일 고종의 강제퇴위를 시작으로 한일신협약 이후 군대해산으로 이어지는 국권 상실의 위기가 계속되자,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들이 봉기하기 시작하였다. 호남 지역은 의병전쟁의 중심지로 많은 의병들이 각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07년 9월 이석용(李錫庸)은 전북 진안(鎭安)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동시에 출사표 성격의 서사문(誓詞文)을 발표하고 8도에 격문을 포고하는 한편, 일본의 죄목을 10개조로 나누어 발표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진안면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라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지속적인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1908년 10월 이후 일제가 호남지역의 의병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자 더 이상 투쟁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909년 3월 6일 부대를 해산하였다. 이석용 의병부대의 해산 이후 휘하에서 부장(副將)으로 활약하던 김동구는 김막동(金莫同)·김상천(金祥千)·박치근(朴致根) 등과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김동구는 전북 옥구(沃溝)·남원(南原)·임실·순창(淳昌)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김동구가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여기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김동구 의병부대 소속으로 일본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군자금과 군수품 모집 활동에 주력하였다. 1909년 10월 24일 김상천과 함께 임실군 하신덕면(下新德面) 물염리(勿染里)에서 엽전 850문(文)과 소 1마리를 모집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게 붙잡혔다. 그 해 11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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