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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의

朴東儀

미상 ~ 189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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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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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평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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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민용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호명리(虎鳴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성장과정 등은 확인할 수 없다. 민용호(閔龍鎬)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민용호 의병장은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을 일으켰다. 1896년 1월 28일 민용호로부터 관동창의진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고 군사의 직책으로 합류하였다. 관동창의진에서 의병운동 방략을 수립하였으며, 특히 관동창의진의 거점을 강릉군(江陵郡)으로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덕원부(德源府)의 원산항(元山港)을 점령한 후 평안도와 함경도로 진출하여 그곳의 병사를 모아 청나라와 연합작전을 전개할 것을 헌책(獻策)하는 등 관동창의진의 주요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관동창의진은 강릉으로 이동하였다. 1896년 1월 29일 대관령을 넘어 강릉성 밖의 구산((龜邱山), 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까지 이동하였다. 강릉 진입을 앞두고 부대를 재편하였는데, 이때도 군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부대 재편을 마친 관동창의진은 강릉 진입을 시도하였다가 뜻밖에 지역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더욱이 강릉에는 이미 권익현(權益顯)·심홍택(沈鴻澤) 등이 중심이 되어 의병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지역 의병에게 보내는 ‘부중의진(府中義陣)’을 인정하는 격문과 단발령을 방관하는 것을 질책하는 격문의 작성에 일조하였다. 그 결과 지역 의병이 경무서(警務署) 및 순검청(巡檢廳)을 부수고 친일 개화정책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고준식(高俊植) 경무관보(警務官補)를 잡아 민용호에게 인계함으로써 즉시 강릉에 입성할 수 있었다. 강릉에 입성한 뒤 지역 세력을 흡수하여 강릉을 의병운동의 근거지로 만들고 의병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관동구군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를 설치하였다. 1896년 2월 7일 원산 공격을 위한 북진 계획을 서둘러 북으로는 함경남도, 남으로는 경상북도에 이르기까지 의병의 소모사를 파견하였다. 이러한 사전 준비 작업을 하는 데 군사로서 기본적인 방책을 마련하였다. 그 해 3월 4일 2,380여 명의 대병력을 이끌고 원산항을 공격하기 위해 출정하였다. 3월 8일 선발대가 원산항에서 80리 떨어진 신평장(新坪場)에 도착한 후 원산 공격에 앞서 3월 16일 러시아공사관 등에 공문(公文)을 보내 원산 공격 계획을 통보하였다. 또 거류 중인 일본인 이외의 다른 외국인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하는 글을 첨가하였다. 이와 동시에 소규모의 선발대를 원산에 잠입시켜 원산시가의 곳곳에 방화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방화 초기에 이를 신속히 진화함으로써,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3월 19일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맞서 완강히 저항하였다. 관동창의진은 우중(雨中)에 화승총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백병전까지 벌여가며 항전을 벌여 일본군 13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장교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크게 패하고 말았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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