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朴在洪1903. 1. 18 ~ 1979. 6.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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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3년 1월 18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김해면(金海面) 서산리(西山里)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박윤실(朴允實)이고, 결혼하여 아내 순남(順南)과의 슬하에 4형제를 두었다. 종교는 불교이다. 일찍이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타이세이중학교(大成中學校)에서 학업을 마치고 나가사키고등상업학교(長崎高等商業學校)에 진학하였다. 고등상업학교 졸업 후 인삼 행상을 하면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과(政經科)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20년 초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박열(朴烈)에 감화되어 무정부주의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에게 독립 자금을 후원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6년 1월 22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6월을 받고 미결 기간까지 포함하여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일본활동사진주식회사 닛카츠(日活)키네마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부산조선방직 인사과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대구에서 대경관(大鏡館)이라는 영화관을 경영하다가 다시 일본 오타이현(大分縣) 벳부시(別府市)으로 건너가 일선무역상회(日鮮貿易商會)를 설립, 경영하였다. 1932년 제주 파견 관동군(關東軍)으로 종군하여 1등 통역관으로서 펑톈성(奉天省)·러허성(熱河省)·지린성(吉林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각 성을 돌며 참전하는 한편 장춘시거류민교포단(長春市居留民僑胞團)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36년 고향인 김해로 돌아가 김해운수주식회사(金海運輸株式會社) 사장으로 일하던 중, 기업 비리사건에 연관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김해주조주식회사(金海酒造株式會社)를 설립, 경영하였고, 일선공애회(日鮮共愛會) 회장, 대일본신농회(大日本神農會) 간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3년경 김해군에서 개최된 노무동원(勞務動員) 시국좌담회 회의장에서 한국인의 강제징용안이 거론되자 이에 반대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1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국가동원령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풀려났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경남 김해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후보를 사퇴하였다. 이후 대동신문사 경남지사장, 대한청년단 경남후원회 조직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김해군 갑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재직 중 국회 제출 건의서에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동료 의원들의 날인을 받아 사적 목적으로 이용하였다가 1개월간 출석 정지당하는 징계처분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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