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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貞烈

朴貞

1890. 8. 18 ~ 197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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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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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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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0년 8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 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919년 4월 6일 경북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우곡면 도진동 만세운동은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의 박재필(朴在弼)과 도진동 박영화(朴英華)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19년 4월 6일 오후 6시경 도진동에서 박재필이 나팔을 불어 주민을 모았고, 박영화도 마을 주민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때 적극 호응하여 만세시위 대열에 동참하였다. 밤 9시경이 되자 마을 천변에 나가서 주민 50여 명과 합류하고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군중들과 함께 질서 있게 대열을 지어 마을 안을 행진하면서 우곡면사무소로 나아갔다. 밤 11시경 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주민들과 함께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견디다 못한 면장이 밤 12시경 직접 밖으로 나와 해산을 간청하였다. 이에 시위대가 해산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일제 경찰은 주도자와 적극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하였다. 시위를 주도한 박재필·박영화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모진 신문을 거친 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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