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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鎭龍

鎭

1894. 11. 6 ~ 195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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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魯鎭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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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오산사립고등보통학교
  • · 홍동학교
  • · 성내청년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4년 11월 6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성내면(星內面) 대흥리(大興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경희(景羲), 호는 성재(誠齋)이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노진용(魯鎭溶)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전북 감독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19년 7월 임시정부 국무원령 제1호로 임시연통제가 공포되면서 연통제가 시행되었다. 서울에 임시총판부, 각 도에 감독부, 각 군에 총감부, 각 면에 사감부를 두어 군자금 모집과 정보 수집을 해온 임시정부의 국내 기본 조직이었다. 전북감독부(全北監督府)는 부감독 오의균(吳毅均), 재무원 이휴열(李烋烈)·황종관(黃鐘寬), 고문 강대직(姜大直)·이석열(李錫烈)·나홍균(羅鴻均) 등 16명으로 구성되었다. 전북감독부 감독으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 통신,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물 소개 활동을 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청년회 및 교육사업 활동을 지속하였다. 1921년 8월 7일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고창경찰서에 붙잡혔다가 조사를 받고 21일에 풀려났다. 1922년 2월 2일 고창군에 위치한 오산사립고등보통학교(吾山私立高等普通學校) 존치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같은 해 3월 성내면 소재 흥동학교(興東學校) 학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5월 노진문(魯鎭文)·김성균(金聲均) 등과 함께 전북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12월 14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3년 3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뒤, 1924년 4월 20일에 열린 성내청년회(城內靑年會) 임원회에서 모집출장원(募集出張員)으로 선정되었고, 기금 10원을 납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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