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금
미상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부인구제회
- · 영남부인실업동맹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대한부인구제회
- · 영남부인실업동맹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생몰 시기와 출신지, 미주로의 이주 시기 등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없다. 신정금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국내의 만세운동 소식이 하와이까지 전해지자, 3월 15일 손마리아(孫瑪利亞)의 주도로 하와이 각 지방의 여성대표 41명과 함께 호놀룰루(湖港) 국민회 건물에서 공동대회를 열었다. 3월 29일에는 2차 대회를 열고 대한부인구제회를 결성하였다. 대한부인구제회는 국내에 재난이 있을 때마다 구제금과 구제품을 보냈다. 1927년 대의장에 선출되었다. 1928년 9월 호놀룰루에서 김보배·박금우·곽명숙·이혜경·박정숙·이양순 등의 발기로 영남부인회(嶺南婦人會)가 조직되었는데, 이후 영남부인실업동맹회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운동 후원에 공헌하였다. 한때 회원이 150여 명에 달하였고, 1936년 2월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1935년 6월 대한부인구제회에 호놀룰루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부 총무로 선임되었고, 1936년 4월에도 총무로 선임되었다. 1937년 1월에는 한인부위원회 임원, 3월에는 부인구제회 총무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4월 중앙부와 호놀룰루지방회 연합으로 개최된 부인구제회 창립기념식에서 「전진 방침」이라는 주제로 연설하였다. 10월에는 부인구제회 중앙부와 호놀룰루지방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후원을 결의하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한 수전위원(收錢委員)으로 뽑혔다. 1943년 3월 부인구제회 창립기념식에서 부인구제회의 역사에 대해 강연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한미승전(韓美勝戰) 후원금 수봉위원(收捧委員)으로 선임되었다. 1944년 1월 호놀룰루 대표로 대한부인구제회 대표회의에 참석하였고, 그 해 3월에는 대한부인구제회 중앙부 총무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회 통상회에서 특연금 수봉위원으로 선정되었고, 12월에는 대한부인구제회 중앙부장에 선출되었다. 1945년 3월에는 전시 한국 동포 구제를 위한 수금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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