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옥
朴在玉1889. 11. 7 ~ 1946. 5.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광복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89년 11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홍주면(洪州面) 송월리(松月里)에서 출생하였다. 박재영(朴在榮)·박재순(朴在淳)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20년 간도에 있는 독립운동단체 광복단(光復團)의 국내 단원으로 가입하여, 충청남도 일대에서 단원과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국내 남부의 광복단 책임자인 김국경(金國景)은 간도에서 광복단 단장 박성빈(朴聖彬)의 명에 따라 전라, 경상 및 충청남도 지역에서 단원과 군자금을 모집할 임무를 맡고 서울에 잠입하여, 그곳에서 동지들과 함께 일제의 관공리를 암살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政務總監)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가 충청남도를 순시하기 위해 10월 9일 공주(公州)로 간다는 말을 듣고, 미즈노를 처단하기 위해 동지를 평양으로 보내 폭탄과 권총을 조달하게 한 다음 김국경 자신은 계획 수립을 위해 먼저 공주로 이동하였다. 그때 공주에 체류하다 우연한 기회로 오랜 친구였던 김국경을 만나 앵산공원(櫻山公園, 현 공주 3.1중앙공원)에서 광복단 가입 권유를 받고 이를 승낙하였으며, 광복단의 충청지부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첫 활동으로 김국경을 도와 정무총감 암살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거사 당일과 이튿날인 10월 10일까지 무기 조달을 위해 평양으로 파견한 동료들이 도착하지 못하였고, 정무총감 역시 공주를 떠나 논산(論山)으로 이동하였으므로 계획은 실패하였다. 이후 김국경이 광복단의 계획에 따라 경상도로 이동하게 되면서 충청남도 지역의 광복단 활동을 총괄하였다. 논산군에서 윤상긍(尹相肯)·이승조(李承兆) 등 동지 7명을 모집하였으며, 윤상긍을 광복단 통신원에, 이주호(李周鎬)를 논산지단장에 임명하였다. 또한 이승조의 집에서 광복단의 인장을 제작하고, “한민족이 이웃나라의 노예가 되어 희생당하게 된 전대미문의 사태에 우리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으니, 각지의 선비들이 피를 흘리고 몸을 바치는 정의 인도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신의 생명과 행복, 국가를 생각한다면 독립운동의 자금을 정해진 기일 내에 제공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사업을 방해한 자로 간주하여 최후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는 내용의 통고문(通告文) 8통을 등사한 다음, 통고문에 자신의 명의와 광복단의 인장을 기재하였다. 이 통고문을 강영희(姜榮羲)·정인행(鄭寅行)·이주호를 통해 당시 논산 일대의 부호였던 윤구병(尹龜炳)·조동시(趙東始) 등에게 발송하여 군자금 수천 원을 모집하였다. 이 같은 광복단 충청지단의 활동은 1920년 11월 8일 조동시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숙소에서 단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히면서 종료되었다. 1921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절도, 공갈, 살인예비와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