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相益
相益1849. 11. 12 ~ 1941. 9.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동삼성한인공교회(東三省韓人孔敎會)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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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7) 1849년 11월 12일 경상도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생림면(生林面) 금곡리(金谷里, 현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에서 노필연(盧佖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字)는 치삼(致三), 호(號)는 대눌(大訥), 이명은 노교리(盧校理)이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만 16세 때인 1865년부터 김해부사 허전(許傳)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校書館副正字),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사헌부 장령(掌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등을 역임하였으며, 1905년 5월 10일 홍문관(弘文館) 시강(侍講)에 제수되었으나 을사늑약 반대 발언 혐의로 밀양헌병대에 구금되었다. 1910년 11월 일왕(日王)의 은사금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밀양군(密陽郡) 단장면(丹場面) 태룡동(台龍洞) 헌병대에 구금되었다가 영남루(嶺南樓) 근처의 헌병대로 이감되어 고초를 겪었다. 은사금을 받으라는 일제의 강요에 ‘이는 매국노들이 받아먹는 것이지, 망국의 대부가 어찌 이에 관여할 것인가. 만약에 다시 강요한다면 죽을 뿐이다.’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1911년 63세 나이로 서간도 안둥현(安東縣) 접리수(接梨樹) 서구(西溝)로 이주하여, 안효제(安孝濟)·신백우(申伯雨) 등과 한인촌을 조성하고 이주 한인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1913년 11월 이승희(李承熙)·안효제·맹보순(孟輔淳) 등과 동삼성한인공교회(東三省韓人孔敎會)를 창립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동삼성한인공교회는 이주 한인들을 규합하고 후학을 가르쳐 민족문화를 지켜가기 위해 설립된 단체였다. 공교회를 기반으로 유림 인사 및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통사절요(通史節要)』·『동역고(東域考)』·『동제고략(東制考略)』 등 한국의 영토·제도·의례에 관한 저작을 집필하는 등 이주 한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데 진력하였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었으며, 1922년 생림면 금곡리로 돌아와 천산재(天山齋)에서 두문불출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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