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석
朴啓石1883. 3. 3 ~ 1908. 10.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지홍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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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3년 3월 3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송해면(松海面) 하도리(下道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개석(朴開碩)·박완민(朴完民) 등이 있다. 1900년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에 입대하여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1908년 4월 무렵 지홍윤(池弘允)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8년 (음)2월 13일에 지홍윤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중대장을 맡아 돌격대 역할을 수행하였다. 1908년 (음)3월 20일 황해도 배천군(白川郡) 장방곡(長防谷)에서 일본 헌병 20여 명과 1시간동안 전투를 벌였다. 이후 부대를 재정비하여 그 해 (음)4월 27일 30명을 이끌고 연안군(延安郡) 증산포(甑山浦)에서 배를 타고 강화도(江華島) 장봉도(長峯島)에 와서 군자금 40원을 모금하였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황해도와 강화도 사이의 연평도(延坪島)·위도(葦島)·송가도(松家島) 등의 섬들을 왕래하며 군자금 모금활동에 종사하였다. 1908년 (음)6월 동료 의병 고부성(高夫成)과 함께 일제의 밀정으로 의병활동을 방해하는 방일갑(方一甲)을 처단하였다. 그 해 (음)7월 전 육군 기병대 참교(參校) 출신으로 박정빈(朴正斌)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 강화도 말도(末島)를 근거지로 하며 스스로 창의돌격대(倡義突擊隊) 총대장이 된 김용기(金龍基)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고부성·황재호(黃在浩)·김기섭(金基燮)과 함께 강화도 서문밖 방돌(方突)에서 일제 밀정이었던 부내면(府內面)의 송대현(宋大鉉)과 산이포(山伊浦)의 양학진(梁學辰)을 처단하였다. 1908년 (음)10월 4·5일경에는 강화도 내가면(內可面) 췌산동(贅山洞) 인근에서 고분 도굴을 시도하고 있던 일본인 10여 명을 습격하여 그 중 6명을 처단하였다. 1900년대에 강화도에서 횡행하고 있던 고려시대 고분 도굴을 응징하는 행위였다. 3일 뒤 근점면(艮岾面)에서 90명의 병력으로 부대원을 늘렸고 (음)10월 15일 연안군(延安郡) 증산포(甑山浦)로 이동해 일본헌병 수십 명과 전투를 벌였다. 같은 해 10월 12일 강화군 삼해면(三海面, 현 송해면) 하도동점(下道洞店)에 머물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총으로 저항하여 일본 순사를 부상시켰지만 결국 고부성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강화군 순사주재소에서 조사를 받고 인천경찰서로 압송되던 도중에 탈출 시도를 하고자 하였으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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