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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순

裵明順

1901. 4. 20 ~ 195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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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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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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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완도군 고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901년 4월 20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고금면(古今面) 농상리(農桑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1월 22일 완도군 고금보통학교에서 고종 1주기 추도식 후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학생들에게 배부하며 학생들을 독려하여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1920년 1월 10일 밤 고금면 도남리(道南里) 출신의 고금보통학교 학생 정학균(鄭鶴均)이 고금면 청룡리(靑龍里)의 이현열(李顯烈)과 만나 만세운동을 제의하여 동의를 얻었다. 이현열과 정학균은 고종 서거 1주기인 1920년 1월 22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하고 각 마을별로 책임자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해 고금보통학교 졸업생 등 평소 친분 관계에 있는 이들과 접촉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찬성하여 농상리의 책임자가 되었다. 1월 21일 이현열이 자기 집 사랑채에서 같은 마을의 김천영(金天寧)·홍철수(洪哲洙)와 함께 같은 집안의 이수열(李守烈) 등의 도움을 받아 태극기 약 30장을 만들었다. 그날 밤 정학균은 덕암리의 고금공립보통학교 기숙사에서 태극기 약 40장을 만들었고, 1월 22일 아침 정학균과 함께 같은 기숙사에서 태극기 30장을 추가로 제작하였다. 1월 22일 고금보통학교에서 고종 1주기 추도식이 거행되자, 오전 11시경 동지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가지고 고금면 농상리 뒤쪽 산기슭으로 가서 학생들에게 배부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은 학생들에게 내려오라고 외치며, 산 위로 쫒아 올라갔다. 그러나 산 위에서 만세를 부르던 시위대는 사라졌고, 고금보통학교 앞에 약 300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정학균과 이현열이 차례로 연설을 하였고, 그들의 선창에 따라 군중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이 산 아래로 내려오자 그 사이 군중은 만세를 부른 후 모두 흩어졌다. 일제 경찰은 고금면 주재소에 검거 본부를 설치하고, 만세시위 참가자 80여 명을 연행하였다. 이때 붙잡혀 1920년 2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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