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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환

裵東煥

1898. 8. 16 ~ 198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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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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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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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흠치교
  • · 신간회 안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4) 1898년 8월 1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정산동(鼎山洞)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음)12월 안동군 임북면 정산동에서 흠치교(吽哆敎) 교도가 되었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해 치성비라고 하는 군자금을 모집하고 다수의 교인 집단을 만들어, 1924년 갑자년(甲子年)을 기하여 국외에서 이미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독립결사단과 호응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선전해 자금 모집과 교단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흠치교는 교주 아래로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은 6인조를 두고 6인조는 다시 각 12인조, 12인조는 각 8인조, 8인조는 각 15인조 등 순서를 통해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각 조직별로 치성비(致誠費)라는 이름으로 6인조는 30원, 12인조는 15원, 8인조는 10원, 15인조는 5원을 거두어 종교 행사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흠치교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교도들이 일심동체(一心同體)할 것을 맹세한 후 8인조로 활동하였다. 이후 주변에 거주하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설득하며 흠치교에 가입을 권유하였으며, 치성비를 모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1929년 1월에는 신간회 안동지회 대표회원 후보로 선정되었다. 8월에는 신간회 안동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봉건 미신 타파와 청년 교육을 통한 지역 발전 등을 추진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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