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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창근

方昌根

1885. 11. 4 ~ 196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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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방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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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牙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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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의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아산군 온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85년 11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온양면(溫陽面) 신인리(信仁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온양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결의단(結誼團) 비서장(秘書長)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온양면 온양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전개된 온양의 만세시위는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며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일제 경찰은 시위대에 총을 쏘고 탄압하며 시위 참여자를 붙잡았다. 이때 붙잡혀 태형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같은 해 11월 10일 고형진(高亨鎭)의 집에서 이기하(李起夏) 등과 비밀결사 결의단을 조직하고 비서장을 맡았다. 결의단은 비밀리에 격문을 배포하고 인쇄부·경찰부 등의 조직을 두었다. 그리고 단장은 이기하, 인쇄부장은 이병의(李丙儀), 경찰부장은 김형준(金炯埈)이 맡았다. 11월 20일경 김형준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이라고 새겨진 인장을 사용하여 내무총장 이동녕(李東寧) 명의로 「경고」·「통첩」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각각 제작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단원 오백동(吳伯東) 등과 함께 서울의 부호 안종면(安鍾冕)에게 독립자금 기부를 요구하던 중 이를 거부하자, 12월 14일 직접 집을 방문하였다가 잠복하고 있던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이로 인해 결의단의 실체가 드러나 단원 수십 명이 검거되었다. 1920년 3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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