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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협

朴志協

1870 ~ 1919.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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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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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곽산(郭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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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정주군 곽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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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6) 평안북도 곽산군(郭山郡) 안흥면(安興面) 안의동(安義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7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6일 곽산면 읍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곽산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천도교 중진 간부인 김진팔(金鎭八)이 1919년 1월 5일부터 2월 22일까지 서울 우이동(牛耳洞) 봉황각(鳳凰閣)에서의 49일 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중앙의 비밀 지령을 받고, 2월 25일 정주(定州)로 돌아왔다. 김진팔은 곽산교구장(郭山敎區長) 김경함(金庚咸)을 비롯하여 정주교구장 최석일(崔晳一)과 정주의 천도교 간부들을 비밀리에 만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기독교 측과도 제휴하였다. 천도교와 기독교 교인들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여 곽산역 근처와 각 마을에 배부하였다. 이때 거사 계획을 전해 듣고 만세시위에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6일 만세시위 장소로 갔다. 만세시위를 시작하자 곧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시위 주도자 김경함이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한 후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3월 15일 헌병보조원이 안의동에 나타나 만세운동 참여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헌병보조원들에게 붙잡혀 폭행을 당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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