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국
朴楨國1897. 11. 12 ~ 1972. 1.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범어사 지방학림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범어사 지방학림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11월 12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서면(西面) 대연리(大淵里, 현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범어사(梵魚寺)로 출가하여 만세운동 시기에는 범어사에서 설립한 중등 과정 교육기관인 지방학림(地方學林)의 학승이었다. 1919년 3월 18일 동래면 서문 부근과 19일 동래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4일 범어사 출신 승려 김법린(金法麟)은 한용운(韓龍雲)으로부터 범어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범어사 내 청련암(靑蓮庵)으로 내려왔다. 이후 김영규(金永奎) 등의 주도 아래 범어사 승려, 지방학림, 명정학교(明正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는데, 이때 적극 참가하였다. 3월 17일 저녁 청련암에서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함께 모인 약 40여 명의 범어사 승려와 학승들은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행동에 나섰다. 송별회가 끝난 후 범어서 승려, 학승들과 함께 동래면 읍내로 이동하였다. 3월 18일 새벽 1시 복천동(福泉洞)에 있는 동래포교당에 도착하였는데, 갑자기 경찰 20여 명이 들이닥쳐 김영규 등 주도자 4명을 끌고가고,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범어사로 돌아가지 않고 3월 18일 밤, 동래면 읍내 서문 부근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여 동래시장을 지나 남문까지 행진을 강행하는데 앞장섰으며, 이후 자진 해산하였다. 그날 밤에 다음날에도 대대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기 위한 계획을 주도하였다. 3월 19일 오후 5시경 다시 동래시장에 승려들을 이끌고 나가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후 일제 경찰의 모진 조사를 거친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이후 명정학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해방 후 금정중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범어사에서 승려로 은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