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朴在鎬1885. 7. 8 ~ 1949.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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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5년 7월 8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 현 주천면) 금마리金(馬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1일 강원도 영월군 주천(酒泉)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박광훈(朴光勳)·이병익(李炳翼)·박수영(朴受永)·이용헌(李容獻) 등과 함께 주도한 만세운동이었다. 이중 가장 먼저 만세운동을 제의한 사람은 박광훈이었다. 박광훈은 면장을 지낸 아버지 박수경(朴受景)의 집에서 만세시위를 제의하였는데, 그때 함께 하였다. 이들은 논의 결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열기로 하고, 박춘희(朴春喜)·김창진(金昌鎭)·박수찬(朴受燦)에게 태극기를 만들도록 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금마리에 영월 군수가 농사 강화를 위한 강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 계획을 바꾸어 당일에 만세 시위를 펼치기로 하였다. 박광훈의 발의로 만세운동에 동참을 약속하는 주민들의 서명을 받을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도 만들었다. 다른 주도자들과 같이 마을을 돌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명부에 서명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런데 군수의 마을 방문이 무산되면서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거사 당일인 4월 21일 아침, 군수가 강연을 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을 다시 규합하였다. 명부에 서명한 주민들을 찾아가 시위 계획을 알리는 한편, 장날을 맞아 장터로 가는 주민들을 모아 시위에 동참하게 하였다. 오전 11시경 군수 석명선(石明瑄)이 금마리에서 강연을 하였고, 이후 강연을 마친 군수가 주천리(酒泉里)로 향하였다. 이때 군중을 이끌고 주천리 길목에서 군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수가 길목에 이르자 주도자들과 함께 나서서 군수에게 만세를 부를 것을 강요하였다. 군수는 200명이 넘는 시위 군중의 기세에 할 수 없이 만세를 선창하였다. 군수의 선창에 시위 군중과 함께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수를 앞세우고 시위 군중과 함께 주천장터와 마을을 돌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를 마친 후 흩어져 귀가한 저녁 무렵, 주천헌병파견소에서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쳐 「만세연명부」를 빼앗고, 주도자들을 구타하고 체포하였다. 그리고 명부에 서명한 주민들도 모두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같이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그 해 7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을 취소하고 징역 8월로 감형하였다. 이후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8일 영친왕(英親王)의 혼인으로 내려진 ‘은면(恩免)’으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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