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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필

朴在弼

1884. 7. 12 ~ 1957.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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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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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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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84년 7월 12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야정동(野亭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6일 경북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월 6일 우곡면 도진동(桃津洞)에 가서 박영화(朴英華)를 만나 “근래 각 곳에서 한국독립만세를 부르는데, 고령군만 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면목이 없다. 오늘은 주민을 모아 만세를 부르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고령군의 만세운동을 제안하였다. 이에 박영화가 적극 찬동하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같은 날 저녁 나무 나팔을 불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세시위에 참여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박영화에게도 사람을 모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오후 9시경 적지 않은 마을 주민들이 호응하여 마을 냇가에 모였다. 모인 주민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주민들이 적극 찬동하자 이들을 이끌고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마을로 행진하였다. 오후 12시경 시위 대열은 마을을 지나 우곡면사무소에 이르렀다. 면사무소 앞마당의 나무 아래에서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그러나 면장(面長)의 설득으로 곧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의 시위는 4월 8일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 면사무소에서 박채환(朴採煥)이 주도한 만세운동, 그리고 우곡면 대곡동(大谷洞)에서 박기로(朴基魯)가 주도하고 한이군(韓二君)·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用) 등이 참여한 만세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시위 이후 일제 경찰은 주도자와 가담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하였고, 결국 박영화·박차석(朴且石)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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