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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선

朴在先

1881. 10. 7 ~ 19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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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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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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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1년 10월 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39세로,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1919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중평동 만세시위는 월곡면(月谷面) 계곡동(桂谷洞)에 거주하던 유연성(柳淵成)이 전국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유동수(柳東洙) 등 주민들과 협의하며 시작되었다. 이들은 1919년 3월 21일 편항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알렸다. 이 거사 계획을 듣고 만세운동 참여를 결심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아침,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동민들과 함께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2시경 유연성이 앞으로 나와 장터 중앙에 서서 군중들에게 왜 만세운동을 해야 하는지 연설한 후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유연성의 선창을 신호로 함께 모인 사람들과 한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불렀다. 장터 여기저기에서 울려 펴지는 만세소리에 장꾼과 주민들도 동참하면서 시위 열기가 점점 높아져 갔다. 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 경찰이 급파되어 주도자를 체포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경찰들은 총검으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유연성과 배태근(裵太根)을 체포하면서 저항하는 배태근의 뺨을 때렸다. 이 광경을 보고 분노하여 군중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달려들어 항의하였다. 시위 군중들의 기세에 눌린 경찰이 주재소로 달아나자, 유연성·배태근·조학이(趙學伊) 등 주도자들과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주재소에 도착한 시위대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일제 경찰이 가로막으며 권총 한 발을 쏘았다. 발포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주재소 벽과 창문을 모두 파괴하였으며, 시위대 일부는 달아나는 경찰을 쫓아가 철저히 응징하였다. 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책상과 의자 등의 기물을 부수고, 장부와 서류도 모두 찢어 창문 밖으로 던졌다. 일제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과 칼, 주재소 안에 있던 탄환과 대검 등을 모두 모아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에 버렸다. 주재소 시위를 마치고 군중 일부는 해산하였지만, 주도자들과 함께 또 다시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 벽과 창문, 가스등을 부수고 사무소 안 집기와 장부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다음날까지 이어진 만세운동은 새벽 3시경에 마무리되었다. 일제 관헌의 만세운동 주도자와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손괴, 가택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즉각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이후 1921년 7월 6일 고문과 수감생활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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