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룡
朴在龍1887. 12. 5 ~ 1955. 3.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887년 12월 5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내동면(奈洞面) 삼계리(三溪里)에서 태어났다. 거창(居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유생이었다. 1919년 경남 지역 유생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초 같은 동리에 거주하는 박재수(朴在秀)와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만세운동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어 박재수와 같이 함양군(咸陽郡) 병곡면(甁谷面) 도천리(道川里)에 거주하는 한문 교사 권도용(權道溶)을 방문하여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권도용이 흔쾌히 승낙하고 만세시위 추진 계획을 같이하기로 하자, 그에게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를 유림에게 촉구하는 다양한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독립선언서와 격문들이 완성되면 대량으로 등사하여 각 지역 유생들에게 배포할 계획이었다. 권도용은 「조선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경포서(朝鮮獨立警布書)」, 「조선독립책선문(朝鮮獨立責善文)」, 「조선독립충고문(朝鮮獨立忠告文)」, 「조선독립가(朝鮮獨立歌)」 등 유림의 독립운동 지지와 그 행동으로서의 만세시위를 촉구하는 격문들을 작성하였다. 「조선독립선언서」와 격문들이 완성되자 이것을 들고 4월 말에 사천군(泗川郡) 유생 강대익(姜大翼)을 찾아가 거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였다. 강대익 역시 여기에 적극 찬동하였다. 이어 5월에 접어들어 박재수·권도용·강대익 등과 비밀리에 자주 회동하여 자금 마련 등 계획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진주 읍내 대안동(大安洞) 김봉란(金鳳蘭)의 집, 유일여관(唯一旅館)이 주요 회동 장소였다. 5월 말에 들어서 계획은 보다 진척되어 권도용이 작성한 「조선독립선언서」 등의 문서를 유림에 배포하기 위한 대량 인쇄를 시작하였다. 5월 30일 강대익과 친분이 있던 사천군 축동면(杻洞面) 면서기 김형권(金亨權)의 협조를 얻어 면사무소 등사판를 가지고 나왔고, 강대익 집에 함께 모여서 대량으로 인쇄하였다. 「조선독립선언서」, 「조선독립충고서」 등 5종 각 230부씩, 총 1,150부였다. 인쇄한 「조선독립선언서」 등을 경남지역 유림에 배포하여 유림대회 조직과 만세운동을 본격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 만세시위 계획의 정보가 누설되어 진주경찰서에 박재수·권도용 등 계획을 추진한 인사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8월 1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즉각 불복해 항소하였지만 그 해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유지하였다. 다시 불복하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