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재각

朴載珏

1881. 9. 19 ~ 1935. 12. 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재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81년 9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축산면(丑山面) 도곡리(陶谷里)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중옥(仲玉)이다. 활동 당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19년 영덕군 영해면(寧海面) 성내동시장(城內洞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의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권태원(權泰源)·남효직(南孝直) 등이 지역민과 협의한 후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성내동시장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영해면·병곡면(柄谷面)·창수면(蒼水面)·축산면 등의 주민들에게 참가를 권유하였다. 이때 권유를 받고 시위 참가를 결심하였다. 3월 18일 성내동시장으로 갔고, 오후 1시경부터 2,0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 사람들에게 참가를 호소하였다. 이후 군중들과 함께 시위를 해산시키려는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순사 스즈키 쓰루지로(鈴木鶴次郞)와 일제 경찰들을 포위하여 구타하였다. 또한 주재소와 스즈키의 집, 우체국, 영해공립보통학교의 건물과 집기·공문서 등을 파괴하는 데 동참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9일 포항과 대구에서 출동한 일본군 헌병대의 진압으로 해산되기 전까지 계속 참여하였다. 시위대 해산 이후 참가자 검거에 나선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소요를 이유로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