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수
朴在秀1894. 9. 26 ~ 1966. 12.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관련 사건
- · 정의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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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1) 1894년 9월 26일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대지면(大池面) 창산리(蒼山里)에서 박치서(朴致瑞)와 윤성녀(尹姓女)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본명은 박점석(朴占碩)이고, 자는 재수(在秀)이며 이명은 박만조(朴萬祚)이다. 이재분(李在粉)과 결혼하여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다. 종교는 기독교이다. 7세부터 5년간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14세부터 3년간 기독교 신학교를 다녔다.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중국 펑톈성(奉天省) 칭위안현(淸源縣)으로 건너갔다. 1928년 5월 거주지인 칭위안현 남산성자(南山城子)에서 이만엽(李萬葉)과 만나 협의한 후, 정의부(正義府)에 참여하였다. 펑톈성 하이롱현(海龍縣)과 카이위안현(開原縣) 지방을 관할하는 정의부 해원총관소(海原總管所) 제5구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8월 24일 펑톈성 시펑현(西豐縣) 하구(河口) 도록조선인민회(掏鹿朝鮮人民會) 회장 박규벽(朴奎壁)의 집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박규벽 등 친일 행위자를 처단하려고 하였으나, 박규벽이 펑톈으로 도망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1928년 9월 22일 카이위안현 청하구 양수천자조선인민회(凉水泉子朝鮮人民會) 구장 김상배(金相倍)의 집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였다. 9월 28일 김상배와 박규벽에게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28년 11월 26일 해원총관소 검무감(檢務監) 이만엽과 시펑현 다구(茶溝) 임성률(林成律)의 집에서 이영구(李永九)·이영완(李永完)·이영백(李永栢)·이영순(李永順)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날 박규벽 후임으로 도록조선인민회 회장이 된 이진현(李震賢)의 유인으로 철령일본영사관(鐵嶺日本領事館) 도록 분관 인근 김병률(金炳律)의 집으로 이동하여 머물렀다. 오후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약 1시간 동안 교전을 하였다. 교전에서 이만엽은 전사하고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1929년 1월 1일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어, 1929년 5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과 강도, 살인 협박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29년 7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살인 협박은 무죄가 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4년 11월 15일 가출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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