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근
朴養根미상 ~ 1908. 6. 28
관련 단체
- · 박양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박양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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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정확한 출생 시기와 출신 지역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908년 6월 황해도 수안군(遂安郡)에서 의병 40~50명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황해도 수안군은 평산군(平山郡)과 서흥군(瑞興郡)과 인접했으며, 높은 산이 많고 험난한 곳이었다. 때문에 일제의 탄압을 피해 소규모 의병 활동을 벌이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 대표 금광인 수안금광과 홀동(忽洞)금광이 있어 군자금 마련이 유리하였고, 금광의 외세 잠식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의병에 협조적인 지역이기도 하였다. 1908년 6월 25일부터 일본군은 황해도의 수안군·평산군·신계군(新溪郡), 평안남도 상원군(祥原郡) 등을 대상으로 15일 동안 의병 색출 작전을 벌였다. 요코하마(橫濱和義) 중위가 이끄는 제2토벌대는 6월 28일 새벽 2시 서흥군 도하방(道下坊) 산성동(山城洞)에 의병들이 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색을 시작하였고, 김영석金(永錫) 의병부대의 방달신(方達信)을 체포하였다. 이때 40~50명의 의병과 함께 수안군 율계방(栗界坊) 석우리(石隅里)에 잠복하며 의병 활동을 펼치고 있던 의병부대 위치가 노출되었다. 결국 1908년 6월 28일 새벽 석우리에 도착한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고 부대원들과 숲속으로 피신하였지만, 끈질긴 수색 끝에 부대원 최병언(崔丙彦)과 붙잡히고 말았다. 이송 도중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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