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훈
朴義熏1895. 10. 22 ~ 1983. 6.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대한통의부
- ·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신흥무관학교
- · 대한통의부
- · 한국독립당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5년 10월 22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오촌리(梧村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호산(湖山), 이명은 명진(明鎭)이다. 만주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3년 1월 만주 환런현(桓仁縣)으로 이주하였으며,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1911년에 개교한 신흥강습소가 1919년 5월 3일에 이름을 개칭한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는 군사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민족정신 함양을 위해서 국어·국사·지리교육을 강조하였다. 졸업생들은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국민부(國民府) 등 주요 무장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대한통의부 제4중대원으로 입대하여 섭외를 담당하였다. 1922년 8월 남만주 환런현에 통합군단으로 성립된 것이 대한통의부였다. 통의부는 남북만주의 모든 독립군 세력을 망라한 결집체는 아니었지만, 경신참변(庚申慘變) 이후 소규모 유격전을 전개하며 새로운 투쟁방략을 모색하고 있던 남만의 독립군을 통합한 조직이었다. 1930년 5월 50여 명의 결사대원과 함께 하얼빈(哈爾濱) 일본총영사관을 습격하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노동절을 즈음하여 고려공산당원(高麗共産黨員)이 벌인 사건으로 파악하였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중외일보』에 의하면, 오후 7시경에 이르러 중국인 학생과 한국인 약 50여 명이 삼삼오오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앞에 모여 별안간 일제히 돌을 던지며 총영사관을 습격하였다. 유리창과 기물을 모두 부수고, 그 여세를 몰아 그대로 총영사 관사를 습격하려다가 현장에서 십 수 명이 검거되고 나머지는 모두 도주하였는데, 그 중에는 한국인 여학생도 다수 참여하였고 모두 공산주의 계열로 파악하였다. 하얼빈시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기마대 1개 대대를 출동시켜 비공식 계엄 상태에서 32명을 검거하였다. 이때 중국 측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1931년 북만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입당하였다. 한국독립당은 1930년 7월 북만주 에이허현(葦河縣)에서 조직되었다. 민족유일당운동과 정의부·참의부·신민부의 3부 통합운동이 결렬된 후 북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와 생육사(生育社)가 중심이 되어 1930년 7월 결성하였다. 조직은 중앙에 6개 위원회를 두고, 지방에 지당부(支黨部)와 구당부(區黨部)를 두었다. 중앙위원장은 홍진(洪震)이었고, 각 위원장은 총무 신숙(申肅), 조직 남대관(南大觀), 선전 안훈(安勳), 군사 이청천(李靑天), 경리 최호(崔灝), 감찰 이장녕(李章寧)이었다. 당강(黨鋼)은 삼본주의(三本主義), 즉 민본정치(民本政治)의 실현, 노본경제(勞本經濟)의 조직, 인본문화(人本文化)의 건설을 채택하였다. 당군으로 이청천을 사령관으로 한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을 조직하였다. 이 지역의 합법기관인 한족자치연합회(韓族自治聯合會)를 지도 육성하면서 북만주지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중앙위원회 결의를 통해 한국독립군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중국의 리두(李杜)·팅차오(丁超) 등이 이끄는 지린자위군(吉林自衛軍)을 비롯하여 카오펑린(考鳳林)·오이청(吳義成) 부대 등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933년 이후 더 이상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 불가능해지자 북만주 한국독립당 사람들 대다수가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는데, 이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1931년 하얼빈에 정착하여 교외 승덕가(承德街)에서 중국인과 같이 동풍태정미소(東豊泰精米所)를 경영하였다. 소규모 사업으로 시작하였으나 1938년에는 하얼빈 정미업계 왕좌를 다투는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와중에도 독립운동 지원 활동을 지속하였다. 1936년 7월에는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서 학생 모집차 오광선(吳光鮮)이 하얼빈에 파견한 황인식(黃仁植)·김기대(金基大)를 거주하게 하고 여비를 지원하였다. 광복 후에 귀국하여 오광선이 주도한 대한국군준비위원회(大韓國軍準備委員會) 산하 대한국군준비총사령부(大韓國軍準備總司令部)에 참여하였다. 총사령부는 참모부·부관부·헌무부·군수부·군기부·군의부·교통부·경비부 등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는데, 군기부 차장으로 활동하며 국군 창설에 이바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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