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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균

朴汝筠

1887. 12.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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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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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위원(渭原)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위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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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참의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1887년 12월 13일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서태면(西泰面) 송계동(松溪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해관(朴海官)·박창제(朴昌濟)·한명도(韓明道) 등을 사용하였다. 1913년 만주로 이주하고 농업활동에 종사하였다. 이주 후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고 항일운동을 하였다. 1926년 10월 참의부(參議府) 소속으로 독립운동 방해자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13일 국내로 잠입하다가 평북 위원군에 있던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체포 당시 참의부 제1중대에 소속되었으며, 거주하던 곳의 주소는 펑톈성(奉天省) 환런현(桓仁縣) 이차구梨(車溝)였다. 참의부는 남만주에서 성립된 무장독립단체로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이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내 제1·2·3·5 중대 500여 명은 통의부와 관계를 끊고 새로운 항일운동을 모색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하여 새로운 군 정부를 조직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1923년 군사와 민정을 관할하는 새로운 조직인 참의부가 결성되었다. 관할 구역은 백두산 인근 지안현(輯安縣)을 중심으로 푸쑹(撫松)·창바이(長白)·안투(安圖)·퉁화(通化)·류허(柳化) 등 압록강 연안 지역이었다. 참의부 제1중대는 여러 부대 중 최고 정예부대라고 알려져 있으며, 백광운(白狂雲)·김선풍(金旋風)·김소하(金筱厦)등이 중대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동아일보』와 『신한민보』에는 정의부(正義府) 소속의 부원으로 활동하던 그의 활약상과 당시 직책 등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1928년 3월 말 정의부 내무(內務)로 활동하던 중 지령을 받고 지안현 유수림자(楡樹林子)에 왔다가 이후 국경을 넘어 국내로 잠입하다가 위원군 경찰서의 탐문을 받고 붙잡혔는데, 정의부 내 제2공서(第二公署)에서 경리(經理)직을 담당하였으며 체포 당시 직책은 제2공서 검무(劍舞)였다. 정의부는 1924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만주 지역에 있던 여러 무장 단체들을 통일하고 효율적으로 항일운동을 펼치기 위해 조직되었다. 길림민회·서로군정서 등 12개 단체가 통합되어 만들어졌으며, 양기탁(梁起鐸)·지청천(池靑天)·오동진(吳東振)등이 창립을 주도하였다. 위와 같이 자료에 따라 활동하였던 단체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펑톈성 환런현 이차구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참의부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1928년 3월 위원경찰서에서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판결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고, 1929년 5월 1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살인강도와 공갈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1년 11월 3일 가출옥하였으며, 풀려난 이후에도 일제의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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