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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朴重勳

1891. 7. 7 ~ 194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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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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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昌寧)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창녕군 영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1년 7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계성면(桂城面) 명리(明里)에서 태어났다. 창녕군 영산면(靈山面) 읍내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영산의 천도교인들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가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들로부터 만세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천도교인인 구중회(具中會)·장진수(張振秀)·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깃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사 전날 밤 구중회의 집에 모여 「결사단맹세서(決死團盟誓書)」와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였다. 거사일인 3월 13일 만세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22명의 결사단원과 함께 영산 앞산 남산봉(南山峰)에 모여 「결사단맹세서」에 서명하였다. 사전에 참여자를 모으기 위해 남산봉에서 개춘회(開春會)가 열린다고 선전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결사대가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만세시위 분위기를 탐지한 일제 경찰들이 남산 밑 만년교(萬年橋)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집회를 방해하였다. 이에 분개하여 일제 경찰과 충돌하는 동시에 혼란을 틈타 군중에게 태극기와 선언서를 나눠주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300~400여 명의 군중이 합세하여 영산 읍내로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영산면 읍내 곳곳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후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구중회·장진수·김추은 등을 창녕경찰서로 끌고 갔다. 이에 격분하여 긴급 모임을 갖고 야간을 틈타 창녕경찰서로 항의하러 가기로 하였다. 밤 8시경 다시 다수의 군중과 남산봉에 모여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영산 읍내에서 시위를 벌인 후 창녕 읍내로 몰려갔다. 급파된 일제 경찰과 계성교(桂城橋) 근처에서 마주쳐 충돌이 발생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저항하였으나 결국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곧바로 항소하여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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