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준창
朴準昌1890. 6. 30 ~ 1962. 8. 3
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임실군 청웅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6월 30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청웅면(靑雄面) 남산리(南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해룡(朴海龍)을 사용하였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1919년 청웅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평소 자주독립(自主獨立)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던 중,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후 남산리 마을 장터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독립선언서가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필조(鄭弼朝) 등 마을 유지들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3월 16일 밤 9시 무렵 남산리 마을 뒤편의 들판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처음 시위대 규모는 약 50여 명이었으나, 이튿날인 17일 밤에 이어진 시위에서는 마을 사람 대부분인 150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의 검속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4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