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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수

朴俊洙

1873. 7. 27 ~ 1937.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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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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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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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장수군 반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7월 27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지사면(只沙面) 관기리(館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장수군(長水郡) 반암면(蟠岩面) 죽림리(竹林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그해 3월 반암면 노단리(魯壇里)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초순부터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와중에 전주(全州)와 군산(群山) 읍내의 동화(桐花)시장 등지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자극받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같은 마을 사람인 이공일(李工一)과 반암면사무소 면서기(面書記) 이종대(李鍾大) 등과 함께 뜻을 모아 3월 22일 노단리 장날을 이용해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3월 22일 오후 5시 무렵 노단리 시장에서 먼저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장터에 모인 많은 군중이 호응하며 함께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해산되었고,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4월 24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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